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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ABLE WITH

HYUNGKO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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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나의 영원한 탐구 대상

몸을 이해한다는 건 내 체형과 움직임, 건강 상태 등을 파악하는 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니체는 몸을 ‘하나의 거대한 이성이며, 하나의 의미로 꿰어진 다양성’이라 말했고,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몸을 ‘소우주’로 바라보았다. 인간이 걷거나 춤추며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어 하고, 근육을 단련하거나 살을 빼며 원하는 형태로 몸을 바꾸려 노력하거나, 옷과 액세서리 등을 덧입어 외면을 꾸미는 것도 몸을 통해 내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형구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몸을 깊이 탐구한다. 이미 20여 년 전에 시작된 그의 연구기는 여러 주제로 가지를 뻗어 나갔고, 그 속에 내포된 이야기는 더 무궁무진하다.

그는 신체 일부분을 확대 및 왜곡해서 보여주는 ‘오브젝츄얼스The Objectuals’와 우리에게 친근한 애니메이션 동물 캐릭터들의 뼈대를 해부학적으로 연구한 ‘아니마투스ANIMATUS’, 몸에서도 눈에 집중해 물고기나 사슴, 곤충 등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조율 장치를 만든 ‘아이 트레이스Eye Trace’, 신체 내부의 해부학적 구조에서 우주의 형상을 발견하는 ‘케미컬Chemical’ 시리즈 등을 통해 재료나 도구, 매체의 구분 없이 다층다각적으로 몸을 이해해 나가고 있다. 이형구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조각적으로 재탄생한 몸과 몸의 세상은 때로 허황하고 기괴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 지금 탑승하고 있는 몸이 낯설게 느껴지고 궁금해지는 신기한 감정을 느꼈다.

모든 작품의 밑바탕에는 작가가 자기 존재를 이해하고 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일 거다. 그 뜻이 우리에게 전해져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적 성장기를 겪게 한다. 앞으로도 이형구 작가의 몸에 대한 상상은 현실이 되고, 그의 탐험은 무한한 지도로 그려질 것이다.

ARTIST HYUNGKOO LEE WRITER GEUNYOUNG PARK EDITOR DANBEE BAE PHOTOGRAPHER CJIN KIM
THIS PROJECT <PRINTS> WORKED WITH RAWPRESS
TABLE #1
테이블 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실험
빌딩 사이를 미로처럼 헤매며 찾아간 이형구 작가의 남양주 작업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텅 비어 있는데도 허공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작가가 선뜻 건넨 위스키 한 잔 덕분이었을까. 그는 괴짜 박사님의 이미지 대신 마르지 않는 순수한 열정을 지닌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다.

이형구 작가의 작업실에서 테이블은 식탁이나 책상 등 특정 용도를 내포한 개념에 갇히지 않는다. 그저 다리 네 개 위에 놓인 편평한 상판일 뿐. 공간을 둘러보니 테이블이라 부를 수 있는 대상은 커다랗고 오래된 나무 책상, 조금 높은 흰색 상판의 나무 책상, 병원에서 볼 법한 은색 스테인리스 선반이 있었다. 작가가 여기 앉아서 아이디어를 구상하거나 커다란 작업물을 만들 때 지지대로 사용하고, 시리즈마다 다르게 사용하는 다양한 재료와 도구, 참고 자료 등을 펼쳐두는 모습을 떠올려 보니 테이블이 가구가 아니라 하나의 공간처럼 여겨진다. 어린 시절 온갖 놀이를 지어내며 뛰놀았던 공터나 어느 배우가 독백을 늘어놓으며 열연하는 소극장처럼 말이다.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에도 만만찮은 시간이 느껴지는데요? 평범한 식탁 의자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형태가 정교하고 아주 훌륭해요.
이 의자와도 연이 깊어요. 2008년 스위스 바젤자연사박물관에서 아니마투스 시리즈로 개인전을 열 때도 전시장 한편에 제 작업실을 재현하는 아니마투스 랩을 설치하기로 했는데, 실제로 사용하는 가구를 스위스까지 가져가기는 어려우니 박물관에 있는 집기를 사용하기로 했죠. 의자와 책상 등을 고르러 박물관 소장품 창고에 갔는데, 너무나 제 취향에 꼭 맞는 스위스 빈티지 가구들이 많은 거예요. 그 중에서도 제 작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상과 의자, 서랍장을 골라 랩을 꾸몄더니, 그 가구들의 아우라로 제 작업실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멋지게 재현되어 기뻤어요. 전시가 끝난 후 박물관 측에서 사용 가구를 선물해주셨는데 테이블은 너무 커서 의자만 들고 왔어요. 그런데 그때 그 테이블을 가지고 오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워요. 어떻게 보면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테이블이라 할 수 있겠네요.(웃음)
이 작업실은 최근에 이사한 공간이라고요, 넓고 층고가 높아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도 듭니다.
이곳의 이름은 ‘HK LAB’이에요. 갖가지 재료와 도구로 다양한 실험을 행하는 제 작업 특성상, 실험실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죠. 이전에 진행했던 작품명이기도 하고요. 저 역시 이 공간의 높은 층고에 반했어요. 규모가 큰 공간에 있다 보면 창의력도 그에 맞춰 향상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곳에서 지내면 저에게도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 작업실 한가운데에 등대처럼 서 있는 알루미늄 탑은 이동식 작업대예요. 저는 천장에 무언가 매다는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 정도 높이의 천장에 손이 닿으려면 사다리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난간을 밟고 올라가 발판을 내리며 작업대 꼭대기로 오르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아직 연습 중이에요. 일련의 과정이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여겨져서 재미있기도 하고요. 요즘은 새로운 공간과 도구에 천천히 적응하며 워밍업 중입니다. 이곳에서 무엇이 탄생할지 아직 지켜봐야 할 거 같아요.
저기 금빛 돌은 그간의 작업에서는 보지 못한 시도인 거 같은데요?
자연석이나 제가 만든 인공석에 얇은 박을 씌워봤어요. 대상의 표면적 물성을 바꿔보는 실험을 해보고 있는데, 아직은 머릿속에 있는 질감이나 색감을 구현하기 위한 테스트 단계예요.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로는 금색 스프레이를 뿌린 것, 금색 물감을 바른 것, 금박을 입힌 것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는 발견을 했어요.
그동안 작가의 삶에 존재했던 테이블 중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 있나요?
지금도 메인 작업대로 사용하고 있는 나무 테이블이요. 2005년 홍대 앞 작업실을 사용할 때, 당장 큰 작업대가 필요해 근처 목공방에서 저렴한 미송으로 주문 제작했어요. 처음에는 투박한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벌써 19년째 작업실을 옮겨 다니며 함께 하고 있네요. 곳곳에 난 흠집에서 세월을 느낄 수 있죠? 이제는 더없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되어서 작년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때 제 작업실을 재현하는 아니마투스 랩 설치 작업에도 사용했어요.
이 인터뷰는 작가의 공간에서 작가가 애호하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진행하고자 해요. 좋아하는 음식으로 위스키를 꼽아 주었죠. 위스키병을 열고, 향을 음미하고, 잔에 따르는 작가의 표정에서 진실한 애정이 전해졌습니다.
위스키는 고유의 향과 맛이 풍부해서 음미하며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온도나 잔의 형태 그리고 물을 조금씩 타거나 얼음 위에 붓는 등 마시는 방법에 따라서도 완전히 느낌이 달라서 다채로운 경험을 남겨주죠. 저는 스포이트로 물을 한 방울씩 섞으며 즐기는 걸 좋아하는데요, 그렇게 마시면 향이 풀어지면서 입안과 코끝에 조금 더 은은하고 오래 머무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위스키에 곁들이는 안주로는 아마레티 마르게리타Amaretti Margherit, 계란 흰자와 아몬드 가루, 설탕으로 만든 이탈리아의 비스킷를 꼽아 주었어요. 이 조합의 ‘음미 포인트’를 알려 주세요.
최근 제 작업에서는 서로 다른 물성과 형태의 사물을 결합해보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시너지를 탐구하는 과정이 핵심적이에요. 그래서 일상에서도 위스키를 음미하고 각기 다른 음식의 조화를 따져보는 마리아주에 흥미를 느끼는 거 같고요. 아마레티 마르게리타는 선물로 받아 처음 맛보게 되었는데요, 굉장히 바삭해서 가루처럼 바스러지고 부드럽게 녹는 식감이 재미있어요. 공기를 잔뜩 머금은 가벼운 덩어리가 제가 작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재료인 우레탄 폼을 연상시키기도 했죠. 풍미가 좋은데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아서 묵직한 위스키의 맛과 향을 돋구는 역할을 톡톡히 해줍니다. 요리할 때도 마찬가지이고, 작업의 영향으로 일상에서도 늘 조화를 찾는 거 같아요. 그 순간에서 또 다른 영감을 얻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