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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E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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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흔들림, 의미의 미끄러짐, 세계의 들림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울음을 토한다. 형상을 식별하고 또렷이 보기 전에 ‘말하고 듣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나 최초로 하는 일일 것이다. 발화의 매개이자 근간인 ‘언어(text)’는 한 단어마다 사전적 의미와 개념이 있을 테지만, 그것은 너무나 예민하고 섬세한 것이어서 단편적으로 어떤 상황에 따라, 자라온 환경이나 배경 혹은 국적에 따라 매우 다층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미술가 정세인은 오래전 페인팅에서 시작해 작업의 재료와 방식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개인의 경험과 서사를 동력으로 텍스트와 이미지가 읽히는 방식과 모습, 언어를 통한 소통의 실패, 그럼에도 끝내 읽히고 마는 새로운 의미와 관계에 대해 탐구하고 작업해왔다.

알루미늄 패널에 타공을 해 텍스트와 텍스트를 서로 다른 컬러로 레이어함으로써 병치하는 타공판 텍스트 작업에서 이는 가장 잘 드러난다.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그가 트릭(trick)처럼 숨겨둔 이면의 텍스트를 발견할 수도 그저 지나치며 하나의 이미지로 남길 수도 있다. 정세인 작가는 무엇이 되어도 그만의 경험 또는 의미로 남는 일이라고 여긴다. ‘Me’인 줄 알고서 ‘We’를 발견하거나 ‘We’인 줄 알고서 ‘Me’를 발견하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지 않을까.

언어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고, 의미는 언제든 미끄러질 수 있으며, 그 실패 속에서 자신이 알던 삶과 세계는 반 발자국 정도 들려 어딘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ARTIST : SANE JUNG EDITOR : DANBEE BAE PHOTOGRAPHER : YESEUL JUN
THIS PROJECT <PRINTS> WORKED WITH RAWPRESS
TABLE #1
그가 지은 나무 테이블 앞에 모여 앉아
경기도 광주 초월읍 지월리 정세인 작가의 작업실에서 눈에 들어온 것 중 하나는 문 열자마자 자리하는, 작업의 메인 공간 중앙에 놓인 묵직한 원목 테이블이다. 올해 3월 개인전을 앞두고 벽 곳곳에 기대 서 있거나 벽에 걸린 알루미늄 재질의 작품들 사이에서 원목 테이블은 자신의 정체성을 곳곳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한 목공방에서 6개월간 직접 만든, 드로잉함의 기능을 하는 테이블이라고 했다. 일본 가구 디자이너인 조지 나카시마(George Nakashima)의 장부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마감 결합 부분에서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Broadway Boogie Woogie’ 페인팅의 불규칙한 네모 형상과 그 비율을 차용해 완성한 테이블에 대한 이야기로 운을 띄우며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정세인 작가가 말했다. “언젠가 누군가와 이 테이블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바랐어요.”
텍스트와 이미지를 서로 호흡하게 하고 연결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이곳, 경기 광주시 지월리의 작업실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경기도 광주는 2020년 영은미술관 단기 입주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곳이에요. 레지던스에 참여하면서 거주지도 이곳으로 옮겼어요. 서울의 한 오피스텔을 임시 작업실로 사용하다가 좀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 작년 12월 중순 즈음 이곳 지월리에 위치한 작업실을 구하게 됐어요. 작업실 크기는 30평 정도인데, 공간 내 작은 방 2개와 싱크대가 설치된 공간이 따로 있어 성격이 다른 작업들을(스프레이 작업과 먼지를 피해야 하는 밑 작업 등)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에요. 아직 공간에 익숙해지는 과정이지만, 입구에서 왼편에 있는 가장 큰 벽이 작업의 메인 공간이 되는 것 같아요. 현재 진행 중인 작업도 많이 세워 둘 수 있어서 주로 이 공간에서 오래 머무릅니다.
작업실에서 보내는 하루의 루틴이 궁금합니다. 현재 봄을 앞둔 개인전 준비로 바쁠 텐데, 요즘 작업실에서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개인전 준비로 정말 여념 없는 날을 보내고 있어요. 아침에는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이후에는 주로 종일 작업실에 머무르며 작업에 임하고 있죠. 오전에는 집에서 주로 구상이나 프린트 작업과 더불어 프레임, 타공판 등 작업 재료를 주문하며 관련 업체와 용무를 보고, 점심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에 몰두해요. 오전 업무 중에서 작업 재료를 주문하는 일은 한편으로는 관련 업체들과 꼭 협업하는 것 같아요. 타공판 자체의 사이즈가 큰 데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서 여러 차례 의견이 오가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작업실에서 쉼이나 휴식을 취할 때는 보통 무엇을 하나요?
프라하 여행 중에 샀던 캐치볼을 종종 가지고 놀아요. 혼자서 할 수 있는 형태인데, 공과 핸드 타이 부분이 고무줄로 연결되어 있어서 일정한 공간만 있으면 충분히 신나게 가지고 놀 수 있어요. 혈액순환이 잘되는 기분이랄까요?(웃음) 다른 하나는, 수시로 메일이나 웹 서치를 하면서 뉴욕 등 해외 전시를 살펴보면서 흥미로운 주제나 작품들을 더 디깅(digging)하고 있어요.
‘테이블’은 예술가의 영감 발현의 장소인 동시에 생활의 흔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적인 사물이 되기도 합니다. 본 인터뷰는 작가의 테이블에서 작가가 애호하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보다 가까이서 이야기를 듣고자 해요. 작가에게 테이블은 어떤 생활 도구 혹은 어떤 의미가 있는 사물인가요?
테이블이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풀어간다는 소개를 듣고 너무 반가웠어요. 여러 가구 중에서 테이블을 가장 좋아하기도 하고, 제게 테이블은 작업대로서 항상 중요한 공간이자 장소이거든요. 작년에 도잉아트에서 진행한 개인전을 통해 보여준 ‘발자크의 테이블과 여우의 비밀’ 작품 역시 이러한 관심 속에서 발자크가 사랑했던 테이블을 조명한 작업이에요.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가 쓴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평전을 읽었는데, 발자크는 평생 빚더미 속에 살면서도 자신이 사용한 워킹 테이블만은 절대 뺏기지 않고 늘 함께했다는 것을 묘사한 대목이 있는데 정말 좋아요. 테이블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본 대상으로 묘사하는데, 저 역시 깊은 공감을 했고 제게도 테이블은 발자크와 같은 의미가 있는 사물이에요.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발자크의 평전에 나온 글을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발자크는 책상에 앉는다. “연금술사가 자신의 금을 던져 넣듯이 내가 나의 삶을 용광로 속에 던져넣은” 이 책상 앞에 말이다. 그것은 작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네모난 책상이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소유물 중 가장 값진 것보다 더 사랑하였다. 터키 옥이 박힌 황금 지팡이나 힘들게 모아들인 은 식기, 화려하게 제본된 책들, 혹은 자신의 명성도 그는 이 작고 말 없는, 다리 네 개 달린 책상보다 더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것을 이 집 저 집으로 이사할 때마다 끌고 다녔으며, 병사가 피의 형제를 싸움의 한복판에서 구해내듯이 경매나 파산에서도 구해냈다. 이 책상은 그의 가장 깊은 즐거움과 가장 힘든 고통의 유일한 친구였으며, 그것만이 그의 참된 삶의 증인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모든 비참을 보았고, 나의 모든 계획을 알고 있으며 내 생각을 엿들었다. 내가 글을 쓰면서 거기에 기댈 때면 내 팔은 거의 강제를 그것을 이용하였다. 어떤 친구도, 어떤 지상의 인간도 이 책상만큼 그를 많이 알지 못했으며, 어떤 여자와도 그토록 많은 밤을 함께 보내지 않았다. 발자크는 바로 이 책상 앞에서 살았고, 이 책상 앞에 앉아서 죽도록 일했다.”
슈테판 츠바이크,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푸른숲, 2018, 240~241p
테이블에서 하는 것 중 하나는 식사도 있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디저트나 음료로 ‘캐러멜 향의 빈, 신맛보다 단맛의 따뜻한 라테’와 ‘마카롱’을 이야기해 주었죠. 이 음식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커피는 마시다 보니 갈수록 산미가 강한 커피보다 고소한 향의 커피를 선호하게 되더라고요. 입맛이 달라진 이유도 있고 단 것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어요. 대부분의 디저트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마카롱은 맛뿐 아니라 입안에서 느끼는 텍스처가 완벽한 디저트라서 좋아해요. 크리스피한 과자 형태가 겉에서 부드러운 크림을 감싸고 있잖아요. 마카롱이라는 디저트의 구성과 텍스처로부터 다정함(sweet)을 느낍니다.
커피나 마카롱과 관련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대학생 때 워킹 비자로 오스트레일리아에 머물며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한 경험이 생각나요. 근처 동네 사람들이나 일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크지 않은 카페였어요. ‘레귤러 커스터머’라고 모두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커피를 주문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저는 커피 머신 기계 옆에서 바로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으며 사람마다 각기 다른 커피 취향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게 꼭 타인의 캐릭터를 커피라는 음료 하나로 짐작할 수 있는 경험 같았죠. 맞은편 빌딩 청소부 아저씨는 항상 같은 시간대의 아침에 들러 라지 컵에 거품 없는 가장 뜨거운 라테를 주문했어요. 그 뜨거움은 제가 손으로 잡을 수 없을 만큼이었죠. 커피를 내리면서 만난 손님들, 손님들과 나눈 대화 그리고 그 시간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평소에 즐겨 먹는 음식이라거나 나만의 특별한 ‘소울푸드’가 있다면요?
음식 중에서 가장 좋아하고 자주 해 먹는 음식은 파스타예요. 스파게티나 링귀니 면 종류를 좋아해요. 그런데 최근에는 많이 바빠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시간조차 없는 것 같네요. 파스타 다음으로 프라이팬에 버터를 발라 구운 따뜻하고 촉촉한 토스트요. 마트에서 산 식빵이든 유명한 제과점의 식빵이든 버터를 바르고 열 오른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낸 토스트는 모두 언제나 감동이에요.
반면, 작업 과정에서의 테이블 사용 모습도 궁금하네요.
타공판 텍스트 작업의 경우 스프레이 과정을 제외하고 기초와 마무리 작업을 테이블에서 하는 편이에요. 캔버스(패널) 안에서의 글자 간격, 위치 조정을 위한 마킹과 스프레이 작업 전 마스킹 등이 이루어지죠. 작품 사이즈가 너무 크지 않다면, 마무리 바니쉬 작업도 주로 테이블에서 해요. 실제 작업 제작을 위한 테이블 외에도 기초 작업이라 할 수 있는 프린팅, 글자 커팅, 컴퓨터 작업을 하는 테이블은 따로 있고요.
회화 판화와 입체조형을 전공한 후 페인팅, 타공판을 이용한 평면형 입체물,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전개하고 있죠. 레디메이드, 회화, 사진, 텍스트, 영상 등을 재료로 취하며 그간의 작업 방식의 변화를 돌아본다면 어떤가요? 작업 방식의 변화들에 어떤 계기가 작용했는지 궁금합니다.
대학에 입학해 다양한 재료와 매체를 작업에서 다루는 것을 배우고, 미술사를 공부하며 많은 작품을 접하면서 제가 사용하는 예술의 도구가 붓을 이용한 페인팅에서 ‘만들기(making)’의 관점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해요. 미술사를 배우면서 제니 홀저(Jenny Holzer)나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 등 텍스트를 사용하는 개념미술작가를 접하고 그들의 작품을 보며 텍스트에 완전히 빠져든 것 같고요. 동시에 작업에서 다루는 작업의 미디엄이 다양해졌어요. 보통은 작품에 담아내고 싶은 의미나 텍스트가 떠오르면 그에 맞는 재료를 선택해요. 물론 순서가 바뀔 때도 있고 항상 일정하지는 않아요. 이런 과정으로 작업을 해오다가 2009년 대학 졸업 이후, 작가로 활동하며 2014년에 석사 과정에 지원하면서 ‘만들기(making)’에 더 가깝다고 느낀 입체조형을 택하게 됐죠.
작업을 살펴보면 방식과 형태는 달라도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삶/사회/현실, 개념이나 관념, 진실 등에 관해 꾸준히 질문을 던짐으로써 세상 또는 대중에게 하나의 사유를 제시한다고 느껴져요. 작업 전반과 연계해 그 근간이 되는 주제와 주제가 된 이유가 궁금한데요.
‘죽음’ 혹은 ‘우리는 먼지다’라는 사실이 제게는 작업의 근간이 되는 가장 핵심적 주제예요.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환경과 부모님에게 받은 교육이 제 정체성 형성, 삶 그리고 작업에 뿌리 깊은 영향을 주었어요. 그들의 기준에 못 미치는 존재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며 그 생각 속에서 자라온 듯해요. 어두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어릴 때부터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크면서 가족이나 사회의 인정을 받고자 자신을 꾸미며 살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다 빈 껍데기인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어요. 그때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 찾아온 스스로에 대한 또 하나의 절망은 돌이킬 수 없는 죄인으로서의 모습이었죠. 제가 믿었던 종교에 대한 신념이 무너지는 경험이었어요. 크게는 이렇게 두 번의 경험에서 저는 계속 죽음을 생각했어요. 현재 작업에 사용하는 ‘삶의 의미’는 죽음의 의미와 맞닿아 있고요. 스스로에 대한 절망, 존재 이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종교와 예술은 내가 다시 사랑받는 존재로서의 공간, 내가 나인 것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경험에서 비롯된 깨달음이 작업의 전반적인 주제가 되고 있죠.
특히 작가가 깊이 천착한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 탐구’는 타공판 텍스트 작업을 통해 미스터리하면서도 극적으로 드러나요. 빈 망점을 활용해 텍스트와 색이 겹쳐지고 혼합되어 텍스트의 형태가 흐트러지면서 읽기 어려워진 텍스트는 먼저 하나의 이미지로 관람객에게 다가가지만, 끝내 읽어낸 관람자들에겐 그 의미는 다시 전달되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는 소통에 실패한 언어가 만들어내는 공감의 가능성과 감정의 흔적들을 담아내고자 하는데요, 작가에게 최초의 ‘언어적(관계적) 소통의 실패’의 경험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언어를 매개로 한 최초의 소통 실패에 대한 경험은 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예요. 말을 트기 시작했을 때 조부모님 밑에서 자라 그들의 말을 따라 하면서 주변의 놀림을 받은 경험이 있고, 학교에서 배운 국어의 내용과 실제 생활 속에서의 괴리를 느꼈어요. 군산이라는 지방에서 자라 사투리로 인해 그 차이를 더 크게 느낀 것 같아요. 또 시골 어른들의 호칭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의문으로 남은 경험과 그 기억들이 지속해서 언어의 관심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이것이 소통의 실패로 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라면, 의미가 흐트러짐(미끄러짐)으로써 다른 의미가 만들어지는 가능성으로서의 언어적 경험은 우연히 라디오에서 듣게 된 ‘무소유’에 대한 내용이에요. 당시 관련 주제를 다룬 책의 인기로 사람들이 무소유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미니멀 라이프’ 등 사회적 관심을 끌 때였어요. 라디오 게스트로 짐작되는 한 분이 무소유의 사전적 의미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다’는 의미의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인간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다’라는 의미라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소유란 단어가 다른 의미로 사회 속에서 기능하고 있음을 이어서 덧붙였어요. 그분의 무소유에 대한 해석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지 못하지만, 단어의 의미가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겐 큰 깨달음이었어요.
2021년 중 자신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이미지나 잊기 어려운 텍스트를 만난 경험이 있다면요?
2021년 10월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뉴 뮤지엄(New Museum)의 트리엔날레 중에서 줌을 이용한 라이브 스트리밍 이벤트가 있었어요. 큐레이터가 직접 작품을 소개하고 설명하는데, <Soft Water Hard Stone>이라는 전시 제목이 무척 인상 깊더라고요. 전시 제목의 레퍼런스로 사용된 브라질 속담을 소개하고 싶네요. 영어로 번역한 문장은 “Soft water on hard stone hits until it bores a hole(Água mole em pedra dura, tanto bate até que fura)”입니다. 이 속담에는 ‘개별적이지만 집요하고 끈질긴 제스처가 이루어낼 수 있는 것들, 끊임없이 흐르고 일시적인 물질로서의 물이 영속성을 지닌 돌을 녹일 수 있다’라는 저항의 은유를 내포해요. 전시 소개글에서도 쓰였듯, 저는 예술이 이러한 ‘부드러운 물’과 같이 굉장히 불안정해 보이지만 그 유동성과 지속적인 제스처를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가하고, 무너진 곳에 회복과 생명을 불어넣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보통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인가요? 그렇다면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한 자신만의 장치라거나 습관이 있는지 궁금한데요.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오히려 바쁠 때 루틴이 더 일정하게 잡히고, 전시나 작업과 관련한 이벤트가 없을 때는 조금 더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것 같아요. 일이 많으면 긴장해서인지 더 규칙적으로 생활하게 되더라고요. 앞서 말한 것처럼, 아침 운동이 규칙적인 일상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장치이기도 해요. 오전 7시 즈음에 테니스를 치는데,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되어서 아직 랠리를 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에요. 1년 정도 지나야 랠리를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반면에 바쁘지 않을 때는 평일을 이용해서 강원도에 가기도 하고 가까운 캠핑장에서 혼자 캠핑도 하며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할 때가 많아요. 작년에는 레이싱 체험이 가능한 인제 스피디움을 알게 되어서 한 세 번 정도 방문했어요. 익사이팅한 활동도 즐기고, 자연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제게는 영감이 돼요. 또 하나는, 작업 특성상 텍스트를 많이 쓰다 보니 책 읽기도 제게는 가장 익숙하면서 오래 해온 좋아하는 취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