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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E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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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흔들림, 의미의 미끄러짐, 세계의 들림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울음을 토한다. 형상을 식별하고 또렷이 보기 전에 ‘말하고 듣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나 최초로 하는 일일 것이다. 발화의 매개이자 근간인 ‘언어(text)’는 한 단어마다 사전적 의미와 개념이 있을 테지만, 그것은 너무나 예민하고 섬세한 것이어서 단편적으로 어떤 상황에 따라, 자라온 환경이나 배경 혹은 국적에 따라 매우 다층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미술가 정세인은 오래전 페인팅에서 시작해 작업의 재료와 방식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개인의 경험과 서사를 동력으로 텍스트와 이미지가 읽히는 방식과 모습, 언어를 통한 소통의 실패, 그럼에도 끝내 읽히고 마는 새로운 의미와 관계에 대해 탐구하고 작업해왔다.

알루미늄 패널에 타공을 해 텍스트와 텍스트를 서로 다른 컬러로 레이어함으로써 병치하는 타공판 텍스트 작업에서 이는 가장 잘 드러난다.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그가 트릭(trick)처럼 숨겨둔 이면의 텍스트를 발견할 수도 그저 지나치며 하나의 이미지로 남길 수도 있다. 정세인 작가는 무엇이 되어도 그만의 경험 또는 의미로 남는 일이라고 여긴다. ‘Me’인 줄 알고서 ‘We’를 발견하거나 ‘We’인 줄 알고서 ‘Me’를 발견하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나지 않을까.

언어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고, 의미는 언제든 미끄러질 수 있으며, 그 실패 속에서 자신이 알던 삶과 세계는 반 발자국 정도 들려 어딘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ARTIST : SANE JUNG EDITOR : DANBEE BAE PHOTOGRAPHER : YESEUL JUN
THIS PROJECT <PRINTS> WORKED WITH RAWPRESS
TABLE #2
센스(sense) 그리고 넌센스(nonsense)
정세인 작가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마주한 시대로부터 끊임없는 아이러니를 경험해왔다. 그가 타공판 텍스트 작업을 통해 단단하고 날카로운 속성을 지닌 알루미늄 패널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원형의 구멍들을 뚫어 텍스트와 텍스트를 병치시킨 것은 개인과 사회, 보편성과 통념, 진실과 역설에 대한 그의 질문이며, 세상을 향한 무기한 질문이다. 아이러니함을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보인 것. 예술도 마찬가지다. 예술 앞에서 사람들은 온 감각(sense)을 열고, 예술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넌센스(nonsense)들로 가득하다. ‘아이러니’는 그의 삶과 예술을 지속해서 움직이게 한다.
타공판 텍스트 작업에 관한 일련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구상부터 완성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 한 편의 작품이 완성되나요?
먼저 레퍼런스나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신문을 비롯한 텍스트를 많이 보는 편입니다. 구글링, 팟캐스트나 음악을 통해서도 얻고요. 그런 자료들을 모으고 최종적으로 사용하기까지의 시간은 작업마다 다른 것 같아요. 이번 개인전에 사용하는 텍스트는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가 무려 10년 전이에요. 페인팅이 완성되기 전까지 작가가 그 이미지와 대화하고 씨름하는 것처럼 텍스트와도 그런 과정을 반드시 거치죠. 제 안에 확신이 설 때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최종적으로 작업에 사용될 텍스트가 정해지면, 작품 사이즈를 정하고 그에 맞는 타공 크기를 정하는 편인데요, 반대로 하고 싶은 타공 크기에 맞춰 작품 사이즈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타공 패널 주문 제작, 타공판과 겹칠 패널 주문 제작을 하고 스프레이 작업을 하기 전, 그라운드(기초) 작업을 하죠. 여기서 그라운드(기초) 작업이란, 타공판에는 그라인딩, 즉 요철을 생성한 후 프라이머를 칠합니다. 그때 종이 패널은 스프레이를 뿌릴 때 종이가 우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아크릴 미디엄과 젯소로 여러 차례 칠하는 밑 작업을 합니다. 이렇게 그라운드 작업이 마무리되면 스프레이 칠을 한 후 바니쉬를 바르고 말린 다음 프레임 제작 업체에 보내서 최종적으로 완성하죠.
타공판 텍스트 작업 중 어떤 과정이나 단계에서 가장 큰 희열이나 감흥을 느끼는지 궁금해요.
타공판과 텍스트의 스프레이 칠을 끝내고 겹친 두 패널을 확인할 때 희열을 느껴요. 작은 사이즈 또는 조금 더 간소한 형태로 미리 만들어 보고 색을 먼저 확인할 때도 있지만 실제 크기가 큰 작업을 겹쳐서 직접 확인할 때 느끼는 희열과 기쁨의 크기나 무게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작업실에서 이루어지는 전체 과정에서 생기는 먼지들이 작업실에 쌓이면서 바닥이나 마스킹을 위해 놓은 박스 골판지 등에 생기는 우연이 만들어 내는 것들이 있어요. 그 결과물들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 따로 모으고 있기도 하고요. 저는 이 작업물들을 ‘더스트 페인팅(dust painting)’이라고 해요. 이 작업과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제 의도가 개입되지 않은 ‘우연(chance)’입니다.
작업의 매개이자 주요한 재료가 되는 알루미늄 타공판을 택하게 된 이유와 계기가 궁금합니다. 타공판 (망점)은 작가의 작업에서 어떤 의미를 띠나요?
실크 스크린의 망점을 작업에 표현해 보고 싶어서 알루미늄 타공판을 샀어요. 사용하던 중에 타공판에 뿌려진 색과 배경이 겹쳐지면서 생기는 효과를 발견하고 타공판 자체를 작업에 이용하기 시작했죠. 제 작업에서 타공판은 표면의 글자와 뒤에 비치는 대상을 숨김과 동시에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데, 두 글자의 가독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뒤에 있는 글자를 보여주는 역할을 동시에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타공판의 개공률을 50%로 유지하면서 타공의 간격을 조절하고 있죠. 이처럼 타공판이 가지는 ‘숨김’과 ‘드러냄’의 두 가지 요소가 그 자체로 역설적 의미를 담고 있는 셈입니다. 그것이 삶의 아이러니나 감춰진 진실 등의 내용을 담은 텍스트 작업과 결부되면서 작업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개가 되는 거죠.
재료의 종류와 담고자 하는 메시지를 결부시킬 때 작가만의 어떤 관점이나 철학이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작업에 담아내고 싶은 아이디어가 먼저 떠오를 때가 있고 재료가 가진 그 자체의 고유적 특성에 따라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먼지나 원두 가루로 표면이나 전시장 바닥에 글자로 표현해 스텐실하는 설치 작업의 경우, 먼지가 먼저 작업의 재료로 떠오른 경우예요. 그러고 나서 먼지로 담을 텍스트를 고민합니다. 무엇이 먼저이든 메시지와 재료를 결부시킬 때의 관점은 ‘재료가 가진 특성이 얼마나 작업의 내용과 연결될 수 있는가’입니다. 그리고 작품이 전시장에서 관람객에게 어떤 식으로 체험 될 수 있을지를 상상하며 형식과 방법을 찾아가고 고안하고 있어요. 그 밖에 재료를 선택하거나 만들고 나서 ‘왜 그리지 않고 만들었을까?’, ‘왜 그림이 아닌가’를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아마도 제게 예술의 첫 언어가 회화였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또한 작업에 의미를 담는 것과 동시에 고려하는 미학적 측면에서는 단순한 형태와 형식이 내포할 여러 가능성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어떤 대상이든지 그 대상이 가진 추상적 부분, 즉 바로 인지(cognition)할 수 없는 부분에서 보는 이가 주체가 되어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언어의 추상성 속에서 의미가 흔들리거나 미끄러지면서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듯 말입니다.
‘ME/WE’, ‘VANITAS/VERITAS’, ‘SMOKING/PRAYING’, ‘SHAME/POLITICS’, ‘REMEMBER/REDEEMER’, ‘SENSE/NONSENSE’, ‘HISTORY/MYSTERY’ 등 개념이나 의미하는 바가 상반되거나 서로 전혀 다른 단어들을 병치하는 작업에서 세상의 무수한 단어 속 길러 올려지고 선택되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단순히 의미상으로 대립하거나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단어를 선택하지는 않아요. 최종적으로 작품에 선택되는 텍스트 안에는 결국은 제 개인적 경험과 서사가 담깁니다. 제가 생각하는 의미가 서로 겹쳐졌을 때 만들어내는 효과를 기대하는 거죠. 작품에 대한 자신의 확신은 이 지점에서 만들어지고, 또 나아가 작품을 완결해가는 원동력이에요. 간략히 설명을 덧붙이면, ‘REMEMBER/REDEEMER’의 경우 ‘구원자를 기억하라’는 의미와 ‘구원자가 나를 기억한다’라는 의미가 겹쳐지는 작업으로 제 종교적 신념과 믿음이 그 바탕이죠. ‘ME/WE’는 한국 사회 속 ‘나’와 ‘우리’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느낀 지점을 말한 작품이에요. 어릴 때부터 ‘공동체’나 ‘하나 됨’과 같은 표어를 교육받았는데, 그 속에 묻힌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대립에 관한 생각으로부터 시작한 작업이었고요. 이 작품의 경우 텍스트가 겹쳐지며 다이아몬드와 같은 형상이 나타나서 조형적으로도 효과가 아주 좋았어요.
일차적으로 먼저 드러난 텍스트와 그 뒤로 교묘하고 미스터리하게 숨겨진 이면의 또 다른 텍스트를 통해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은 자신만의 어떤 진실을 발견하거나 마주할 수 있습니다. 혹, 자신의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이 무엇을 느끼게 될지 기대하거나 상상하기도 하나요
직접 쓴 글을 작업에 사용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레퍼런스의 텍스트를 사용하고 있어요. 성서, 문학작품, 영화 대사, 노래 가사 등에서 인용하거나 차용한 글자들이죠. 그 텍스트들 속에서 저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것들은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생각된 텍스트예요. 어떻게 보면 롤랑 바르트가 말한 ‘저자의 죽음’처럼 온전한 나의 이야기가 된 글자들을 작업에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제 작업에서 관람자들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해요. 하지만 가독성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리는 글자들이어서 실제로 작품은 ‘읽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죠. 게다가 한글이라는 모국어가 아닌 영문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말 이미지로만 보일 수 있어요. 두 가지 경우 모두 언어가 경험되어지는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며 작업의 의도로 삼아요.
‘언어’와 ‘관계’에 대한 상호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저는 언어의 고정적 의미에 종속되지 않는 관계를 추구합니다. 그러기 위해 언어가 상대적이라는 관점에서 ‘언어’와 ‘관계’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의식이 항상 언어에 종속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언어의 구조가 사고의 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 또한 사실이기에 언어에 대한 문제의식은 늘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그것을 통용하는 사회구성원 간의 약속이기에 그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 수단이죠. 오랜 기간 동안 역사 속에서 문자가 가진 권력은 절대적이고 그것을 향유한 집단에게는 통치의 수단이 되기도 했어요. 문자의 절대성은 기호의 의미가 항상 하나의 의미로만 귀결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미끄러짐과 해석의 문제를 통해 해체되어 왔다고 생각해요. 제가 살아가는 시대는 ‘저자의 죽음’ 이후의 시대이기 때문에 텍스트를 읽을 때 저자의 생존과 죽음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빈 텍스트를 나로 채울 수 있고, 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따라가며 글을 읽을 수도 있죠. 어릴 적 한글을 배울 때,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언어가 불필요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느낀 부분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호칭의 문제나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그 사람의 나이를 알고 그에 맞는 단어들을 택해야 하는 것들이었죠. 반면, 영어를 배우면서 알게 된 ‘you’는 제겐 너무나도 새로웠고 또 혁명적인 단어와 같았어요. 내가 아닌 모든 상대방, 그 사람의 나이, 나와의 관계와는 상관없이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모두 ‘you’가 되고 ‘you’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부터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동등함을 느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워요.
작년 3월 한 달간 개최된 <Repeating, Remembering, and Seeing(반복하기, 기억하기, 그리고 보기)> 개인전은 도잉아트에서의 첫 전시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시장 공간 속에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자리이자 시간이지 않았을까 가늠해봅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첫 개인전을 회고하자면요? 작가에게 지난 개인전이 어떤 단상으로 남아 있을지 궁금합니다.
<Repeating, Remembering, and Seeing(반복하기, 기억하기, 그리고 보기)>는 타공판 작업을 선보인 첫 개인전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어요. 같은 작품의 내용과 구성으로 2020년 경기 광주 영은미술관과 2021년 서울 도잉아트에서 3개월 정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열었습니다. 전시 리뷰를 써주신 김은주 선생님께서 전시를 보고 제 스테이트먼트(statement)가 더 분명해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동감해요. 그동안 해온 작품 세계와 앞으로 해나갈 작업의 방향들을 잘 보여준 전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과정을 돌이켜 볼 때도 당시 제 모든 역량을 쏟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집중해서 준비한 전시였거든요.
더불어 최근에 준비 중인 전시에 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3월 16일 오픈을 앞둔 이번 전시 역시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타공판을 사용한 레이어 작품들과 ‘WE’RE DUST’ 작품에서 보인 텍스트의 거울 이미지 작업을 큰 사이즈로 제작하고 있어요. 이전 작업에서는 의미가 함축된 텍스트, 단어들을 보여줬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맥락 전체를 그대로 가져온 텍스트가 화면에 가득 찬 글자 이미지로 제시됩니다. 내용적으로는 ‘사랑’의 여러 모습을 담으려고 해요. 특히 메인 작품에 사용한 글은 성경의 두 장면이에요. 각각의 장면을 기록한 복음서 내용을 가져와 타공판에 오버 랩 하는 작품과 두 장면을 분리해서 연마된 거울 스테인리스판(mirror polished stainless)에 텍스트를 올리고 관람자가 텍스트 거울에 비치는 작품이죠. 글의 내용은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모습과 부활한 예수가 베드로를 찾아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장면의 기록입니다. 미술사를 보면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장면은 작가들 사이에서도 종종 사용되곤 하는 인기 있는 주제예요.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나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in)뿐 아니라 여러 화가가 ‘베드로의 부인(Denial of Peter)’이란 제목으로 많은 그림을 그렸죠. 실제로 제가 베드로가 되어 그 장면 속에 깊이 빠져든 것은 예수에게 다시 세 번의 질문을 받을 때 베드로의 그 고통스러우면서 어렵게 내뱉는 진실한 대답의 모습이었어요. 제 삶의 여정 속에서 굳게 믿어온 대상(신)에게 돌아섰던 때가 있습니다. 그에게 다시 다가갈 수 있었던, 그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던 바로 그 텍스트예요. 이 텍스트를 작업에 써보고 싶다는 아이디어는 사실 꽤 오래 했어요. 2009년~2010년에 스케치 정도로 작게 만들었는데, 이번 개인전을 통해 작품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저 역시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잘 준비하고 있습니다.
패션 브랜드 ‘커스텀멜로우(CUSTOMELLOW)’와의 협업 <SENSE & NONSENSE SS22> 작업은 작가의 작업이 알루미늄 패널이 아닌 패브릭에 입힌 새로운 창작물입니다. 인간의 생활 기본 요소인 ‘의(衣)’로 새롭게 탄생한 결과물은 작가에게도 생경하고 의미 있는 작업일 것 같은데요, 전시장이나 갤러리라는 장소에서 벗어나 스웻 셔츠나 스웻 팬츠로 완성된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의 심상은 어떤가요?
브랜드와의 첫 협업이었던 커스텀멜로우와의 협업은 정말 감사한 과정이었어요. 시즌 주제를 듣자마자 분명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고 직감적으로 느꼈죠. 예술이라는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 우리는 작품 앞에서 모든 감각, 즉 센스를 열어 놓잖아요. 예술은 또한 사회에서 통용할 수 있는 넌센스들로 가득 차 있고요. 저는 이 두 가지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감각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샘플을 처음 봤을 때는 패브릭에 구현된 작품의 컬러와 텍스처에 감동할 정도로 디자이너분들의 세심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텍스트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디자이너의 관점과 방법론까지도 배울 수 있어서 특별한 경험이었죠. 작품이 옷이 된다는 사실은 제 작품이 공공의 장소로 확장되어 보이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해요. 개념미술사에서 애드리안 파이퍼(Adrain Piper)가 자신의 옷에 물감으로 ‘젖은 물감(Wet Paint)’이라고 쓰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보여준 퍼포먼스(Adrian Piper, ‘카탈리시스 III’ (Catalyses III), 1970)처럼 제 작업 세계에서도 작품의 개념이나 미학적으로 새로운 지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도가 될 것이라고 기대해요.
커스텀멜로우를 즐겨 찾는 소비자들의 연령대는 대체로 2535으로 캐주얼하면서도 감성적이고 재치 있는 터치가 인상적입니다. 평소 패션에도 관심이 있나요?
주로 작업할 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작업복을 좋아해서 마음에 든 작업복 형태의 같은 옷들을 사서 유니폼처럼 입는 것을 선호해요. 커스텀멜로우라는 브랜드는 협업하기 전까지는 잘 몰랐어요. SNS를 통해 연락을 받았고, 이번 기회로 브랜드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고 여러 관계자분과 협업하면서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이해할 수 있어 뜻밖의 경험을 한 것 같아요.
협업 제품으로 택한 작품은 총 5개의 작품으로, 기존 제작 작품의 텍스트와 이번 콜라보레이션을 위한 별도로 제작한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죠. 기존 작품 중에서는 ‘VICTORY/HISTORY’, ‘SMOKING/PRAYING’, ‘SHAME/POLITICS’, ‘WE/ME’의 텍스트를, 별도로 제작한 작품의 텍스트는 ‘FAITH/FAITH SENSE/SENSE’, ‘HEART/SHIRT’입니다. 새로운 텍스트 작업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려요.
커스텀멜로우의 2022 SS 시즌 주제가 ‘Sense & Nonsense’라는 것을 안 후에 주제에 맞춰 먼저 서치를 진행했어요. 미술사와 문학, 철학 등에서 센스와 넌센스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여러 자료들을 모았는데 역시 최종적으로는 많은 자료들 속에서 직관적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들을 작업에 담았습니다. 가장 대표적 넌센스는 성경의 내용이라고 생각했어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과 역설적 화법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에요. 이런 ‘nonsense’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faith sense’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nonsense’가 직접적으로 쓰인 부분을 여러 번역을 참조해 차용하였고 제목을 ‘Faith Sense’라고 지었습니다. ‘Heart/Shirt’는 고린도 교회에 전하는 바울 서신에 있는 내용으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다(So we do not lose heart)’라는 구절을 가져와 ‘heart’를 ‘shirt’로 바꾸어 두 단어를 병치하여 말장난을 만든 작업이에요. 성경에서 그는 우리가 낙심하지 않을 이유를 ‘보이는 것(죽음, 현재의 모습)을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죽음 너머에 있는 것)을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 또한 터무니없는(nonsense) 말과 같다고 생각해서 이번 협업 작업에 사용했어요. 커스텀멜로우와의 협업이었기에 ‘shirt’를 떠올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완성된 제품 중 특히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제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Heart’가 새겨진 스웻인데, 텍스트 주변에 물감이 자유롭게 드리핑 된 표현과 이미 작업복으로 완성된 옷 같아서 마음에 들었어요.
오랜 시간이라고 한다면 할 수 있는 기간 동안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를 관찰하고, 보는 것/아는 것/말하는 것에 대해 의심하며, 나아가 언어를 통한 소통이 언제든 실패하고 좌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탐구하는 작가를 지속해서 나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언어를 매개로 하는 소통이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다는 가정은 소통의 실패로부터 생기는 좌절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부여한 고정된 의미가 언제나 흔들리는 의미임을 깨달을 때, 그것에 저항하고 극복하는 힘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소설 <주홍글씨>의 헤스터 프린(Hester Prynne)인데요. 청교도사회에서 아빠 없는 아이를 가진 헤스터는 ‘Adultery’의 상징인 ‘A’를 평생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되죠. 하지만 헤스터는 이 형벌의 상징인 ‘A’를 아름답게 자수로 장식해요. 그가 자신의 삶에서 보여준 행동들을 통해 결국 사람들은 그 ‘A’를 더는 Adultery로 읽지 않고 Able로 읽기 시작하죠. 전 이 이야기로부터 시스템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살다가 자신을 잃어버리는 삶이 아니라 고정되고 굳어진 것들을 대면하고 그것들로부터 나를 지키며 살아갈 힘을 발견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업에 담는 텍스트들도 헤스터의 ‘A’처럼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는 텍스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소재와 다채로운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에게 지금의 목표 또는 2022년 한 해를 보내며 기대하는 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질문처럼 2022년에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계획한 새로운 작업이 있습니다. 가깝게는 3월 개인전에서 보여줄 형식은 같지만, 작업 스케일이 커지며 텍스트가 경험되는 방식이 달라짐에 따른 새로움을 기대하고 있어요. 구상 중인 다른 작업은, 이전에 퍼포머들을 통해 보여준 ‘우리, 사랑이 필요할 때’ 2013년도 퍼포먼스를 로보틱 암(robotic arm)으로 구현해보고자 해요. ‘Body’의 은유가 될 로봇에 대한 예술의 담론들로 함께 살펴보고 공부하며 작업을 준비하고 있어서 이것을 잘 해낼 수 있다면 올해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담으로는 테니스 실력이 늘면 좋겠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