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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ICHI HIRA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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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 꾸는 공생

일본의 현대미술가 유이치 히라코Yuichi Hirako는 자연과 인간의 동등함을 주제로 회화, 조각, 설치미술 등의 작업을 한다. 하이브리드 형상을 가진 존재를 매개로 인간과 자연, 환경과 공존이라는 시대의 주요 문제를 비유와 상징이 가득한 화풍으로 풀어내지만, 그것이 얼핏 그리 심오하지 않은 건, 그야말로 우리 시선과 인식에서 가장 익숙한 자연,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회화에서는 특히 강렬하면서도 원화적인 그림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한데 어우러지고, 자연과 인간의 연결은 기묘한 형상을 띠기도 하는데, 그저 한 편의 회화에 머무르지 않고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그 상상은 곧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다’라는 우리의 뿌리 깊은 무의식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오래전부터 꾼 꿈이자 앞으로도 꿀 꿈은 무엇일까? 유이치 히라코는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인간과 자연의 동등함을 그리고 공생을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말하고 있다.

ARTIST YUICHI HIRAKO EDITOR DANBEE BAE PHOTOGRAPHER CJIN KIM
THIS PROJECT <PRINTS> WORKED WITH RAWPRESS
TABLE #2
트리맨 혹은 맨트리
머리는 나무, 몸은 인간인 ‘트리맨Treeman’은 회화, 조각, 설치미술을 오가며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회화에서는 동식물과 하나의 시공간을 누리는 모습이다. 자연과 인간(인공물)이 동등한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다. 유이치 히라코 작가가 만들어 낸 이 창조물은 사람들에 의해 트리맨으로 불리기 시작했지만, 이것은 정말 트리맨일까? 작가는 누가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다르고, 인식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강조해 말한다. 회화에서 그려진 트리맨이 하나의 거대한 조각으로 서 있을 때, 불현듯 자연과 인간이 동등한 존재로 느껴지는 순간, 이것은 ‘맨트리Mantree’로 불려도 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다채로운 매체로 작업을 전개하지만, 하나의 큰 주제 아래 펼치는 회화 작업이 작가님의 주된 작업 형태이자 작업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의 사람, 자연과 사람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주제로 회화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하나의 큰 계기를 말하자면, 저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이 자연과 식물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검증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인간도 아니고 식물도 아닌 인물을 그리려 노력합니다. 그림 속 장면 역시 야외이기도 하고 실내이기도 하죠.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그사이의 존재와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품에는 식물·동물·사람이 결합한 하이브리드 인물인 ‘트리맨’이 반복해 등장하죠. 작가가 창조해 낸 특정 존재인 트리맨은 작품 간 내러티브를 연결하거나 주제로부터 파생된 스토리라인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데요. 트리맨의 탄생 비화를 들려주세요.
참고로 제가 직접 그의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 이름을 짓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관객이 그를 바라볼 때, 인간이 식물에 싸여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식물이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둘 다 맞는 말이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도 매우 흥미로워요. 대부분 사람들은 꽃을 보면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자연은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필요 없는 식물이 자기 집 정원에 있으면 잡초라 부르고 제거하고 싶어 합니다. 즉, 인간은 어떤 생각과 행동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개나 고양이, 새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죠. 수백 년 전 사람들은 자연 보호라는 것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례로, 세 살배기 아이가 제 전시회를 방문했을 때 무서워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즉, 그 아이는 ‘식물은 긍정적인 것’이라는 현대적 교육을 받기 전의 상태였던 거죠. 우리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인식과 사고 그리고 교육을 어떤 식으로 작품에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탄생한 것이 머리는 식물이나 인간의 몸을 가진 캐릭터였습니다. 그 외에 다른 형태의 캐릭터도 존재하고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회화는 조용하지만 강렬한 힘으로 인간과 자연과의 기묘한 관계의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면, 조각이나 설치에서는 눈앞에 실재하는 것 같은 힘이 느껴집니다. 회화와 달리 조각과 설치에서 작가님께서 특히 유념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각각의 매체가 전달할 수 있는 정보와 상황의 우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화는 세계관을 전달하는 데 탁월하지만, 어딘가 남의 일 같고 환상적인 무언가로 해석되기 쉽습니다.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환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만든 세계관이기 때문에 입체나 설치는 회화의 단점을 보완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과 인간의 공생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다양한 관계를 탐구하고, 이를 회화, 조각, 설치 작업에 담으며 주로 일상의 어떤 장면이나 모습에서 작업의 영감을 받나요?
제 작업의 영감은 항상 우리 일상에 존재합니다. 꽃집에서 파는 꽃의 의미를 생각할 때, 공원의 잔디밭을 걸을 때, 휴일에 캠핑을 갈 때 등 매우 일상적이죠.
지난 2021년 갤러리바톤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 <마리아나 산>에 이어 올해 스페이스K에서 연 두 번째 개인전 <여행>. 2년이 지난 지금, 관람객이 지난 전시와 비교해 무엇에 집중해 작품을 관람하면 좋은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연을 정의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입장에서 정의하게 됩니다. 그들과는 아직 대화가 불가능하니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공존은 아직 요원하지요. 또한 우리의 상황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심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자연에 대해 관대해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생각할 여유가 없을 것 같아요.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감상하면 보는 시각이 달라져서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패션 브랜드 ‘커스텀멜로우CUSTOMELLOW’와의 2024 S/S 콜라보레이션 작업은 작가의 작품이 옷과 패션 액세서리 소품으로 재탄생한 새로운 창작물입니다. 커스텀멜로우와 콜라보레이션을 하게 된 소감을 간단히 말해본다면요?
기본적으로 패션은 패션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맞다 생각하며, 한국의 패션 브랜드로부터 그리고 패션계에 제 작품이 하나의 소재로 삼아지는 경험 자체가 신선하고 즐거웠습니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있는 편인가요?
특별히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 ‘겐조KENZO’, ‘그라미치gramicci’의 아이템은 좋아하는 것이 많은 것 같네요.
후디, 카라티, 스웻셔츠, 라운드 긴팔티, 인형, 에코백, 브로치 등으로 구현된 작품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이번 콜라보레이션으로 선택된 작품 중 머리에 한가득 꽃이 그려진 캐릭터가 있어요. 이 꽃들은 언뜻 보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꽃처럼 보이지만, 사실 조금 다릅니다. 가상의 꽃, 꽃집 등에 진열된 품종 개량된 꽃, 야생 그대로의 꽃등이 섞여 있지요. 인간이 관여하지 않았다면 태어나지 않았을 꽃들도 많이 존재합니다. 또한 키링과 브로치 등에 사용된 작품에는 제가 생각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상징하는 아이템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중 가장 기대되는 옷이나 액세서리는 무엇인가요?
역시 에코백인 것 같아요. 사용 빈도가 가장 높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나 자신과 그것을 보는 사람 모두에게 어떤 변화가 생길지 기대하게 만들어 주거든요.
작가의 작품이 옷과 패션 소품이 되어 한국인의 일상에서 어디든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즐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 작품이 그려진 옷이나 패션 소품을 착용하고 사용하는 여러분께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즐거워해 주시면 가장 좋겠네요.
기후 위기와 함께 자연과 인간의 공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많은 사람이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지금입니다. 앞으로 더 시도해 보고 싶은 작업이나 다루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정답은 아마 앞으로 수백년이 지나도 구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조금 더 과장을 보태 이야기해 보자면, 어쩌면 지구가멸망할 때까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스스로 자기 행동의 의미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생각합니다. 넥스트 스텝에도 역시 표현 매체에는 제한을 두지 않은 채 영상, 퍼포먼스 등에도 도전할 생각입니다.